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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basket21
• 성인 여성
• 비이입 온리
• 썰, 커미션 아카이빙
꽃샘추위가 기승인 3월의 어느날이었다. 그날 윤소조는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를 망쳤다. 홀로 반에 남아 가채점을 마치고 교실을 나선 그 애는 복도를 뛰던 소년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바닥에 나자빠진 윤소조는 돌연 서러움에 눈물을 터뜨렸다. 소년은 그런 그 애를 보고 난감해하다, 결국 그 애 앞에 쪼그려 앉아 그 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딴엔 어린 애 달랜다는 감각이었을텐데, 윤소조의 눈엔 그 소년이 어찌나 빛나보이던지. 윤소조는 그 순간 소년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윤소조의 시선에 닿던 명찰 속 이름 세 글자, 박병찬.
17세의 소녀와 19세의 소년. 그것이 윤소조가 기억하는 두 사람의 첫 만남. 박병찬은 기억하지 못 하는.
스무 살의 박병찬과 열 여덟의 윤소조는 나란히 2학년에 진급하여 같은 반이 된다. 앞뒤로 앉은 것을 계기로 친해진 두 사람은 서로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그간 윤소조가 봐온 박병찬은 자리를 잘못 잡은 돌멩이처럼 어디에도 섞이지 못 하고 교정을 부유하고 있었다. 윤소조는 그런 박병찬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순전히 자기 식이었던 그 방법은 무엇이었냐면, 바로 농구로부터 박병찬의 주의를 돌리는 것. 윤소조는 박병찬에게 함께 공부할 것을 제안한다. 농구를 관둔 뒤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박병찬은 그 제안을 승낙한다.윤소조의 도움으로 박병찬은 차차 학업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박병찬은 여전히, 이따금씩, 멍하니 코트를 바라보고는 한다.
한 살을 더 먹은 두 사람은 또 한 번 같은 반이 된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박병찬이 농구부에 재입부한 것으로.박병찬에게 윤소조는 항상 올곧고 안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 애에게 자신의 조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박병찬은 점차 윤소조와 거리를 둔다. 윤소조는 그런 박병찬의 마음을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시간이 지날수록 윤소조를 향한 박병찬의 마음은 어떤 껄끄러움에 가까워져갔고, 갈등은 협회장기 이후에 정점을 치닫는다."오빠, 괜찮아요?"
"다친 데 또 다친 건데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
"미안, 소조야. 내가 말이 곱게 안 나가는 것 같다. 전화 끊자."
멀어졌던 둘 사이가 도로 가까워진 것은 조형고와 지상고의 합동 연습이 있던 즈음. 다시 농구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닥치자 박병찬의 마음엔 되려 여유가 찾아왔다. 그는 그간 냉랭하게 대했던 윤소조에게 사과하기로 마음 먹는다. 박병찬의 솔직한 고백을 들은 윤소조는 박병찬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농구를 계속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박병찬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해야죠. 오빠 농구 좋아하잖아요."이는 박병찬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 박병찬은 농구를 사랑한다는 것.
윤소조의 발언으로부터 농구를 하는 이유를 상기한 박병찬은 무슨 일이 있어도 코트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건 졸업 후의 이야기. 어쩌면 먼 나중일지도 모르는 언젠가.함께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윤소조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윤소조의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오른다. 집 앞에 다다르고 박병찬이 윤소조를 들여보내려 할 때, 윤소조가 박병찬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리고 벌개진 얼굴을 푹 숙인 채 말했다."오빠, 전 아직 오빠 좋아해요···."
다음 날, 두 사람은 고백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만남을 갖는다. 고백을 거절하려던 박병찬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 하는 윤소조에게 연민을 느낀다. 하여 거절을 말하기 전에 짤막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박병찬은 윤소조와 하는 대화가 즐겁다고 느낀다. 그 순간 박병찬은 깨닫는다. 윤소조와 완전히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자신은 윤소조를 사랑하고 있다고.박병찬은 윤소조에게 자신과 만나볼 것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된다.